(제주=제주프레스 편집국) = 영화 ‘한란’은 역사적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모녀의 감정과 여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폭력과 혼란이라는 배경은 최소한의 설명만으로 제시되고,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보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가족 간의 유대를 전면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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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란' 속 한 장면 [웬에버스튜디오·트리플픽쳐스 제공]

“딸을 찾아야 한다”…4·3 속에서 도망칠 수 없던 20대 엄마

영화는 1948년 제주 4·3 당시, 군경 토벌대가 마을을 불태우며 벌어진 혼란을 배경으로 한다.
여섯 살 딸 해생을 극적으로 잃고 찾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토벌대를 피해 산중으로 숨어 지내던 아진(김향기)은 마을이 전소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온다. 무장대는 “이미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진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딸과 재회하는 순간 느끼는 안도는 잠시뿐. 두 사람은 다시 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산과 바다 사이를 헤매야 한다.

영화는 4·3을 거대 담론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름 없는 한 모녀의 생존기를 따라가며, 당대 제주가 겪었던 공포와 부서진 일상,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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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란' 포스터 [웬에버스튜디오·트리플픽쳐스 제공]

4·3, 그날 제주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제주 4·3은 1947년 3·1절 집회 발포 사건 이후 계속된 강경 진압, 이념 갈등, 미군정과 정부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1948년 말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토벌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속으로 숨은 주민들, 불타버린 마을, 양민과 무장대가 뒤섞여 죽어간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인은 이를 두고 “동백꽃이 떨어진 날”이라고 기억한다.
빨갛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삶이 한순간에 쓰러져간 사람들에 대한 비유다.

‘한란’은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아진이 딸을 찾아 나서는 서사 자체가,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제주 여성의 이야기와 겹친다.

영화 리뷰│“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4·3 영화”

‘한란’의 가장 큰 미덕은 4·3을 감성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 폭발이나 이념 논쟁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의 생존 의지를 따라가며 관객이 스스로 비극을 마주하도록 한다.

김향기, 20대 엄마의 내면을 끌어올리다

김향기는 이번 작품에서 섬세함보다 절실함을 앞세웠다.

– 멜로 없는 생존물
– 감정 소비 없는 절제
– 제주 방언의 자연스러운 활용

이 세 요소가 결합되며, 아진이라는 인물이 실제 1948년 제주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 같은 현실성을 만든다.

풍경의 침묵, 그 자체가 증언

하명미 감독은 제주에 살며 4·3을 수년간 직접 공부해왔다.
그 경험이 영화의 카메라 워킹에도 묻어난다.

– 바람이 잠긴 숲길
– 불탄 흔적이 남은 마을
– 무너진 돌담
– 해생이 혼자 서 있는 작은 오름의 능선

이 풍경들은 대사 없이도 당시 제주인의 정서를 증언한다.

감독·배우 인터뷰│‘왜 지금, 4·3인가’

▶ 하명미 감독

“제주에서 살며, 계속 미안했습니다.”

“매년 추념식에 갔지만, 제 입장에서 슬픔만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미안함이 컸습니다.
그래서 공부했습니다. 사건의 구조, 현장, 생존자의 말들…
그 공부가 결국 이 영화가 됐습니다.”

“4·3은 거대한 비극이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딸’과 ‘누군가의 엄마’가 있었어요.
아진과 해생의 여정은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 김향기

“제주말로 말하는 아진이 되기 위해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진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에요.
4·3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한 엄마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주말 대사를 준비하면서 느꼈어요.
그 말 속에는 삶의 습관, 감정의 흐름, 과거의 기억까지 담겨 있더라고요.”

■ 관람 포인트

· 4·3을 정치·역사 논쟁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낸 첫 번째 장편 중 하나
· 김향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연기
· 제주 자연 풍광을 통한 ‘말 없는 증언’의 미학
· 모녀 생존 스토리를 통한 보편적 감정의 확장성

■ 제주 지역 상영관 안내

개봉일: 1월 26일 / 러닝타임 118분 / 12세 이상 관람가

아래는 제주 지역 기준 개봉 예정 주요 상영관입니다.
(※ 상영 일정은 극장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CGV 제주

제주시 구산로 82
– 6관·7관 중심 상영 예정
– 조조·심야 편성 가능성 있음

● 롯데시네마 제주

제주시 연북로 48
– 개봉 첫 주 주말 상영 확대 가능

● 메가박스 제주하귀

제주시 애월읍 하귀9길 62
– 예술·독립영화 라인업과 함께 편성될 가능성 높음

● 제주씨네필하우스(독립·예술전용관)

제주시 중앙로
– 감독·관객 대화(GV) 기획 검토 중

제주프레스는 개봉 주간 상영 시간표 업데이트 시점에 맞춰
추가 안내 기사를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