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제주=제주프레스) 선보배 기자 = 제주섬 곳곳에 남아 있는 전통 설화가 다시 한 번 현대 콘텐츠의 중심에 섰다. 2025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부문에서 이유미 작가의 작품 ‘일레’가 대상을 수상하며, 지역 신화의 가치와 확장 가능성을 다시금 증명했다.
‘일레’는 제주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일뤠신(일레신)’에서 출발한다. 병을 앓는 아이를 보살피고, 산모·아이의 안부를 챙긴다는 신앙적 존재. 거칠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 돌봄을 받지 못했던 옛 제주 사람들에게 일뤠신은 생명과 회생을 상징하는 보호의 신이었다.
이 작가는 이 오래된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 장르 서사에 어울리는 인물·세계관·감정 구조를 재창조했다. 소녀와 신의 거래, 7일이라는 시간 제약, 그리고 ‘살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목표는 독자적 서사 추진력을 형성한다.
심사위원단은 “설화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물 심리와 플롯 설계가 정교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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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 수상작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제주 설화가 가진 힘: ‘신이 곁에 있는 섬’의 서사 유전자
제주의 설화는 육지부와 결이 다르다. 척박한 자연환경, 끊임없는 외세 침탈, 바람·바다·화산이라는 극단적 자연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과 신성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았다.
신은 산과 들, 바람 속에 존재했고, 여성의 몸·출산·돌봄 역시 신화가 되었으며, 마을마다 수호신이 자리했다.
일뤠신은 그런 신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존재다. 아이의 열을 낮추고 산모의 숨을 살핀다는 믿음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생존의 경험이었다.
‘일레’는 이러한 설화의 기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소녀가 신과 맞서고 협상하는 현대적 서사 구조를 도입해 재미와 긴장감을 더했다. 제주 설화의 ‘생활신화’적 성격과 현대 서사의 ‘퀘스트 구조’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사례다.
■ 심층 인터뷰: 이유미 작가, “제주 설화는 완성된 세계관이다”
제주프레스는 이유미 작가와 짧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실제 발언이 아닌, 취재 형식에 맞춘 가상 인터뷰입니다)
— ‘일레’를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무엇인가.
“제주 설화의 핵심은 ‘어떻게 살아남아 왔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뤠신은 돌봄의 신이고, 병든 아이를 살리는 신이죠. 거기에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결합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움직였습니다.”
— 주인공 소녀와 일레신의 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설화 속 신들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분노도 맛보고,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거래도 하죠. 그 양면성을 현대적으로 풀고 싶었습니다.”
— 제주 설화가 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은.
“제주 신화는 이미 견고한 세계관을 갖고 있어요. 캐릭터도 많고, 역할도 명확하고, 시대를 초월한 상징이 있습니다. 잘 발굴되면 영화·드라마·웹툰 어디로도 확장될 수 있죠. ‘일레’는 그 중 한 조각일 뿐입니다.”
■ 스토리 공모전이 던지는 의미: 지역 설화의 현대적 가치
2025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부문은 올해 17회를 맞았다.
이 공모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글을 뽑는 데서 끝나지 않고 K-콘텐츠로 확장될 원천 IP를 발굴하는 국가 사업이기 때문이다.
‘일레’가 대상을 받은 것은 단순히 작품성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원작 콘텐츠 생태계에서 지역 설화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신호다.
역사·설화 기반 콘텐츠는 최근 OTT와 글로벌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문화적 뿌리를 가진 서사는 가장 강력한 확장력을 가진다” 는 업계 평가도 있다.
■ 후속 지원 및 확장 가능성…영화·웹툰·드라마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수상작을 대상으로
– 사업화 상담회
– 제작사·플랫폼 매칭 프로그램
– 원작 개발 멘토링
등의 후속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일레’는
● 웹툰화
● 청소년·성인용 장편 소설
● 단편 애니메이션
● OTT 오리지널 드라마 파일럿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어, 콘텐츠 업계에서도 관심이 높다는 평가다.
■ 제주프레스 논평
제주 설화는 그 자체로 ‘완성된 신화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활용·연구·재해석은 늘 부족했다.
‘일레’의 수상은 단순한 수상 사실을 넘어, 지역 설화가 현대 콘텐츠 산업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국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제주프레스는 앞으로도 지역 설화·문화 기반 IP가 국내외 콘텐츠 시장에서 재조명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취재·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