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개가 아직 바다 위에 머물러 있는 시간, 검은 고무옷을 입은 여자들이 말없이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그들의 어깨에는 그물망이, 허리에는 납덩이가, 그리고 마음속에는 오늘도 살아내야 하는 하루의 결심이 있다.


▣ 물질의 시작, 숨 하나로 버티는 생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 세상은 소리 없이 뒤집힌다.
“후—” 하고 내뱉는 첫 숨비소리가 들리면, 그건 누군가의 일터가 문을 연 신호다.

해녀 김금순(67) 씨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물질은 싸움이 아니우다.
바다가 오늘 나를 받아줄 건지, 그걸 묻는 거지.”

물속에서 해녀의 몸은 시간과 맞선다.
산소통 없이 2분, 3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앞은 푸르게 흐릿해진다.
돌 틈에서 전복 하나를 따는 동안, 바다는 그들의 생명을 시험하듯 밀고 당긴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는다.

“숨을 길게 참는 법은 없수다. 그냥 살아야 하니까 하는 거지.”

▣ 생계이자 신앙, 바당과의 약속

제주의 바다는 해녀들에게 일터이자 신앙이다.
물질 전에는 꼭 ‘바당신’에게 절을 올린다.
오늘 바다가 고요하길, 무사히 돌아오길.

김 씨는 기자에게 묻는다.

“서울 사람들은 일하러 나갈 때 기도 안 하나?
우리는 그걸 바다 앞에서 하는 거요.”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보다도 바다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었다.
그 예의가 이 섬을 지켜왔고, 그 신앙이 오늘의 제주를 있게 했다.

▣ 해녀들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물질이 끝나면, 마을 공터에서 다시 모인다.
그물 속의 해산물을 함께 나누고, 손질하며, 이야기는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자식의 진학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무릎 통증을 참고 웃는다.
그 웃음은 억지로 짓는 게 아니다.
바다를 다녀온 사람만이 짓는, 살아남은 자의 미소다.

▣ 바다는 기억한다

바다에 남는 건 조개도, 전복도 아니다.
그건 사람의 숨소리와 손끝의 흔적이다.
그들은 학자도, 정치인도 아니지만
제주의 역사를 몸으로 써 내려간 사람들이다.

해녀들의 삶은 ‘생존’의 언어로 시작해 ‘존엄’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들의 숨비소리는 오늘도 들린다.
그건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낸 모든 여성들의 노래다.

"기록은 힘이 되고, 진심은 결국 전해진다.”